"헐...너무한데...그래도 솔직히 기록만 봐도 알지." "꼭 그렇지도 않아." 왜였을까. 민세정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언젠가 이 대답을 듣게 되길 기대하고 있었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이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윤재영이라는 건, 뒤돌아보면 당연하다는 감상마저 들었다. 윤재영이 아니면 그...
"오케이. 공 좋다!" 윤재영은 애써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평소엔 그렇게 쉽게 하던 건데 왜 오늘따라 이렇게 어려웠을까. "몇 번을 봐도 장난 아니네. 얘가 그냥 에이스 해먹는 거 아냐?" 어느새 대기 타석에는 권재호가 와서 가볍게 배트를 돌리고 있었다. 성격만큼이나 부드럽고 무리가 없어 보이는 스윙은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어우러져 역설적으로 위협...
"자! 자! 1루수부터!" 그라운드에서는 정희성이 1학년들의 경기 전 수비 연습을 지휘하고 있었다. 짧고 굵은,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지시 사항들. 우렁찬 굵은 목소리. 무엇보다 당당한 눈빛. 그의 모든 면모에서 넘쳐나는 자신이 엿보였다. 그야말로 단어의 가장 순수한 의미대로 자신을 믿고 있었다. 다소 우스울 정도로 정희성의 목소리만 들려 오긴 했지만...
포수를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윤재영은 어느 순간 부터 인가 그 질문을 자주 고민하게 된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이유야 많았다. 일단 포수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사람들이 보통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고생이 정말 많은 포지션이라 품귀 현상은 프로야구에서도 흔했다. 아마추어에 가까운 중, 고교 야구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윤재영의 성격상 빈 포지션 없...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날. 사람들에겐 모두 그런 날이 하나쯤은 있다. 아직 20살조차 살지 않은 고등학교 1학년인 윤재영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그것은 고작 1년전의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경계선에 걸친 하루. 평소의 하루와 다름없는 야구장에서의 하루였다. "아, 아, 아…" 덕아웃 뒤의 의무실에서 몇 번을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의료용 테이핑을 ...
그렇게 얼마나 몸을 맞대고 있었을까. 윤가현의 울음소리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흥건히 젖은 서민건의 어깨에도 더 이상 눈물이 흐르고 있지 않았다. 윤가현의 힘겨운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려올 뿐이었다. 자극의 부재 속에서 둘은 생생하게 느꼈다. 서로의 심장 박동이나 미세한 떨림 하나까지도. 숨 쉴 때마다 들썩거리는 가슴도. 그게 무척이나 편안했다. 서로의 등에 ...
"너무 아무 생각없이 왔나…" 서민건은 자신 앞의 문을 봤다. 1107호. 윤가현의 집이었다. 문제는 여기까지는 기세 좋게 왔는데 들어가서 뭐라고 해야할지 감이 안 왔다는 것이었다. 한 손에 들고 있는 대본만이 서민건의 유일한 무기. 그렇다고 대본만 건네주고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혼자 고민하고 있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겠지...
"5500원입니다~" 아무리 장학금을 받고 있다해도 헛돈 쓰는 건 좋아하지 않는, 아니 좋아할 수 없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평소에 오지도 않는 카페를 와서 좋아하지도 않는 제과를 사고 있는 것일까. 서민건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긍정적이고 밝은 점원의 인사말에, 서민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
윤가현은 모자를 쓰고 온 것을 약간 후회하고 있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온 야구장인데 이렇게 시야가 가려져서야.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벗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김주연의 속셈인지 도발인지 뭔지는 몰라도, 이미 이렇게 구장에 와있는 이상 눈에 안 띄는 수 밖에는 없었다. 유인영한테 얘기하는 것도 정말 속이 터지는 과정이었다. "이번 주말? 봉사? 못 가겠다...
이윤호는 빈 탈의실에서 홀로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언제나 가장 일찍 오는 것도 자신, 가장 늦게 가는 것도 자신이었다. 솔직히 불만은 없었다. 따지자면 이렇게 구장에서 시간을 많이 쓰는 자신이 이상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친구가 없던 이윤호에게, 구장은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요즘 애들처럼 게임도 할 줄 몰랐...
논리가 참으로 교묘했다. '언니도 민건이 아신다면서요! 언니도 그 녀석이랑 얘기해봤으면 아시겠지만, 붙임성이 좋진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응원 갈 애들도 적고~아는 사람이 관중석에 있으면 좋아할 거 같으니까요.' 내가 만나본 누구는 마냥 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더라. 하지만 김주연한테 그런 이야기까지 할 건 없었다. 아니, 어차피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았고....
"4월…5일...토요일...오후 1시…" 서민건은 책상에 앉아 핸드폰에 일정을 기입하기 시작했다. "대 휘일고등학교 [선발]". 평소의 습관대로, 철저히 자신의 규칙대로 기입한 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내가 선발투수라니. 왠지 입력완료 버튼을 누를 수 없어, 그대로 한참 화면을 보고 있었다. 갈수록 고등학교 야구에서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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