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렇게 후보 작품들 한 번 씩 리딩 해봤으니까 잘 생각해보고. 오늘은 해산-" 오늘도 동아리 활동을 무사히 끝냈다. 다들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서 세미나실을 떠나던 와중, 난 자리를 정리 중이던 이진서를 불렀다. "진서야." "네?" "이리 와봐. 조용히." 이진서가 슬쩍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내일이 진은혜 생일이야." "아 진짜요? 헐 대...
내가 대체 왜 이진서를 가지고 속을 썩이고 있는거지. 애당초 이진서가 뭘 하건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그냥 부원이 부족한 게 문제일 뿐. 사람 머릿수만 채워준다면 이진서가 아닌 그 누구여도 나에겐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아이돌 부원 따위 있으나 마나였다. 무대에 올릴 것도 아닌데. 누구든 일을 잘하는 무대감독 보조면 됐다. 그냥 나갈지 안 나갈지 항상 걱정...
어떻게 어떻게 초기의 소동을 극복하고 이진서와 일은 하고 있었지만, 불안감을 무시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진서 일 잘 하지 않아요 형?" 물론 그게 사실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대충은…생각했던 것보단…" "거 봐요! 믿을 수 있다니까요!" "어디서 구라야 이게. 네 확신은 배우로써의 확신이었잖아." "둘 다 잘 할 수도 있죠." "솔직히 말해 딱히...
그렇게 불이 꺼져, 서로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예리씨." "네?" "드려야 하는 말씀이 있어요." 가려진 시야가 묘한 용기를 줘서일까. 지금 얘기해야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한 이상 멈출 수도 없었다. "저, 사실 그렇게 대단한 배우가 아니에요." "겸손하시기는. 그렇게 주위에서 ...
한예리가 날 못 알아봤을때 조금 더 당황하고 조금 더 머뭇거렸던 것은, 마음속으로는 한예리와 친하다고 착각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한예리와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1학기가 끝나고 한예리가 전학을 가서 그렇게 긴 시간을 같이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접점이 많은 편이었다. (내가 여자랑의 접점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
“아- 아. 인터콤 테스트. 무대감독 유승연이에요- 다들 보고해줘.” “후문 테라스에서 윤재영 대기중-” “정문 좌측에서 이하은 대기중-” “정문 우측에서 박수일 대기중입니다-” 나는 그렇게 조용히 읊조리고는 마이크팩의 대화 버튼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뗐다. 관객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원래도 어떤 공연이든 인터콤 시스템을 통한 은밀한 소통은 중요했다...
"수일아." 아- 나왔다. 선생님의 "수일아". 목소리 탁 깔린 이 톤에 이 표정. "지금 무대에서 뭘 하고 있는 거니?" "아...음. 이 배역은 오랜만에 친구를 봐서 반가워서…어릴 때부터 친했지만 각자의 길을 걷느라 한동안 헤어져 있었던. 그리고 지금 우연히 만난.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쁘긴 한데. 추억이 많죠. 하지만 그걸 다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 괴...
"야~ 진짜 큰일 날 뻔 했어. 그렇지?" "이게 큰일 날 뻔했다는 말 정도로 넘어갈 일이에요!?" "에헤이- 또 그런다. 나한테 그래 봤자 소용이 없어요. 화연이가 그렇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하...하긴. 귀신을 자기 몸에 붙잡으려는 생각을 하다니...화연 선배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나 보네요." "뭐, 내가 몸을 지배할 때의 일을 다 보진 못해...
공연, 그러니까 공연 기간 자체의 끝이 아니라 그냥 하루하루 하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커튼이 올라가고 관객이 다 무대를 떠나고 나면 바쁜 사람은 별로 없다. 일단 배우들은 옷을 갈아입고 떠난다. 보러 온 친구나 가족들과 얼른 인사를 해야 되니까. 각본가나 연출 등의 분야는 이미 이 시점에선 할 일이 없으니, 애초에 공연을 보러 오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신들리다. (神---) [동사] 사람에게 초인간적인 영적인 존재가 들러붙다. [예문] 그는 신들린 듯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 정도가 모 검색엔진의 인터넷이 알려주는 사전적 정의이다. 예문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무대 쪽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다. 보통 리허설 과정 중에 한 순간, 배우가 역할에 몰입하는 데에 성공해 그 이후로는 전과는 완전 다른 수준의 연기를 ...
흔히들 사람이 없는 연습실은 조용하고 시원할 거라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방금까지 미친듯이 다들 무언가에 열중하고 몸을 움직이던 장소가 쉽게 그 열이 식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내쉰 뜨거운 숨과 흘린 땀이 있고, 그 이상으로 사람의 기운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한동안 지나다니지 않은 곳은 아무리 여름이어도 서늘한 분위기를 하고 있듯이, 사...
이진서의 등장으로 인한 잠시의 소란 후, 나랑 시원이랑 진은혜는 나머지 부원들을 보내고 이진서의 입부 여부에 대해 긴급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쟤가 뭐라고?" "아이돌이라고요 형, 아이돌! 걸그룹!" 대책 회의라기보단 날 교육하는 거에 가깝긴 했지만. "유명한 애야?" "와아…" 그 말에 시원이는 노트북을 꺼내 뭔가 미친듯이 입력하더니, 곧 영상 하나를 ...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